지난 10월 결혼기념일을 맞아 을지로 입구역 근처 '라칸티나'에 다녀왔다. 서울시 선정 오래가게인만큼 우리도 오래가자는 뜻있는 장소가 될 거 같아 미리 예약하고 다녀왔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인데 또 요즘에 유행하는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이탈리안 음식과는 사뭇 다른 레트로한 느낌이 독특했던 라칸티나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위치 및 기본 정보
라칸티나는 시청역과 을지로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주차가 어려워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운영 시간
- 월요일~토요일 :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10시까지
- 브레이크타임 :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 일요일 휴무
예약은 오래된 가게여서 그런지 네이버나 다른 앱을 사용하지 않아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 예약 전화 : 02-777-2580
생각해 보면 쉽게 예약하고 쉽게 취소할 수 있는 어플을 쓰는 것보다 조금 옛날 방식이라고 생각되긴 해도 옛날처럼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날 식사 자리를 위한 정성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좀 더 예약일을 기대할 수 있는 느낌이 한편으로 들기도 했다. 우리가 갔을 땐 10월 말이었는데 계산할 때 옆에서 예약 전화를 받고 계셨는데 크리스마스 전 예약이 거의 다 차고 있는 걸 보면 오래되었다고 해도 인기 있는 가게임은 확실하다. 오히려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더 느낌이 날 거 같았다.
레스토랑은 삼성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해서 본관 정문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건물 메인 입구 옆 쪽에 보면 이렇게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 여기로 가면 된다.
지하로 가면 이렇게 입구가 있는데 입구부터 뭔가 웅장한 레트로 느낌이 물씬 났다. 간판 주변에는 사진에서처럼 '서울 백년 가게', '오래가게' 등등 레스토랑의 역사가 깊다는 게 다시 한번 느껴졌다.
실제 식사 후기
우리는 남편이 미리 좋은 자리로 예약을 해서 도착했을 때 룸처럼 분리된 공간으로 안내받았다.
사실 지난 번에 방문했을 때에는 예약 없이 방문했었는데, 을지로입구역, 시청역 사이인 위치가 한 몫해서인지 자리가 꽉 차서 복도 쪽의 자리로 안내받았는데 이 날은 안쪽 자리고 넓어서 좋았다. 인테리어도 앤틱 그 자체인데 신혼여행 때 갔던 오스트리아의 식당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라칸티나에는 비공식 세트인 삼성세트가 존재하는데, 메뉴판에는 없지만 삼성가분들이 주로 먹었다는 메뉴로 '식전빵 , 샐러드, 링귀니 라 칸티나, 마늘안심스테이크, 후식 과일'로 구성된 메뉴이다. 코스 같은 메뉴인데도 5만 원대라 저렴해서 많이들 도전하는 메뉴이다.
우리가 가기 전 후기를 찾아보니 삼성세트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는데 오히려 단품 중에서도 맛있다고 하는 메뉴도 많아서 단품과 세트 조합을 잘 하면 더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우리는 가기 전에 단품 +세트 조합으로 가보자라고 합의를 하고 갔다.
남편은 삼성세트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사실 갔는데, 세트 중에서 하나를 남편이 고르면 내가 단품 중에서 메뉴를 고르기로 했었다. 스테이크 코스 메뉴의 경우는 '식전빵, 샐러드 + 파스타/스프 메뉴 1종 + 스테이크 메뉴 1종'으로 구성된다.
우연인지 뭔지 남편은 '마늘로 양념한 안심스테이크 코스(53,000원)를 고르고 링귀니 라 칸티나(파스타)를 골랐다. 그래서 내가 추가로 양파스프가 유명하고 맛있다고 들어서 양파수프(7천 원대)와 라자냐(23,000원)를 추가해서 주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삼성세트를 주문하고 단품을 하나 추가하는 게 더 쌌겠다! .....바보들이네]
그래도 기념일인 데다가 한적한 자리를 배정받아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을지로입구 근처라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이랑 애플스토어를 구경하며 데이트한 뒤 온터라 적당히 배도 고프고 음식이 나오기 전 설렜던 거 같다. 레스토랑이 전통이 있는 곳이다 보니 서빙해 주시는 분들도 나이대가 있으셨는데 친절하셨고 빠르게 음식을 서빙해 주셔서 좋았다.
샐러드는 드레싱을 두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었는데 우리는 상큼한 쪽을 택했고 마늘빵도 정말 맛있었다. 수프에 찍어 먹으면 맛있을거 같아서 스프가 나온 후 마늘빵은 찍어 먹었는데 역시나 마늘빵 위에 양파스프 치즈를 얹어 스프에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양파스프도 나왔다. 양파스프 위의 치즈가 많아서 잘 저어서 먹어야 하는데 양파스프는 오히려 한국음식 같은 맛이 났다. 치즈를 걷어내고 스프만 먹으면 국 같은 느낌이랄까. 미국에서는 아프면 양파스프를 먹는다는데 마치 국같은 느낌이어서 따뜻하게 속을 데워주는 음식이라 상상이 되었다.
음식은 바로바로 나오는 편이었다. 아마 정식 코스를 주문한 게 아니어서 그런 거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인의 밥상?처럼 한 상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물론 다 먹은 음식은 오셔서 바로바로 정리해 주셨다.
다음으로는 피클과 함께 주문한 라자냐, 링귀니 파스타,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라자냐를 보고 어릴 적 갔던 경양식 레스토랑의 치즈파스타가 생각이 났다. 사실 여름에 갔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먹은 라자냐가 그리워서 라자냐를 주문했던 건데 내가 생각한 라자냐의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맛있기도 하고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해서 신선했다.
삼성세트 대표 메뉴인 링귀니 라 칸티나이다. 처음 봤을 때에는 조갯살이 엄청 많은 점과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는 게 신기했는데 딱 먹었을 때도 한국음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조개살이 생각보다도 더 많고, 국물이 정말 맛있다. 맨 처음 라칸티나를 소개할 때 요즘 새로 생기는 정통이탈리안 레스토랑과는 또 다른 느낌의 이탈리안 식당이라고 언급했었는데 라자냐나 이 링귀니나 모두 그런 느낌을 받았다.
완전 이탈리안 메뉴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우리는 한국식 입맛에 맞는, 경양식의 느낌이 들어 이 가게만의 특색이라고 받아들여져서 즐겁게 식사했다.
마지막으로 스테이크. 스테이크 옆 감자도 정말 맛있고 당근을 익혀 가니쉬로 곁들인 점도 레트로한 느낌? 굽기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맛있게 먹었다.
소감
트렌디한 식당도 아니고 음식도 이탈리안 셰프의 이탈리안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30대인 우리만 해도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경양식 스타일의 한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는 친숙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 좋았다. 앤틱 그 자체인 인테리어와 경양식 느낌의 음식인데 일하시는 분들이 다 어리면 오히려 억지스러울 테지만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오신 듯한 나이 있으신 분들의 발 빠른 서빙이 더해져 오래도록 이 식당이 이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싶었다.
식당을 나와 시청역 근처로 걸어가면서 남편한테 왜 여기를 그렇게 좋아하냐고 하니, '여기처럼 오래된 가게가 오랫동안 있었으면 좋겠으니까'라고 했다. 트렌드에 따라 휙휙 바뀌는 세상에서 혼란스러울 때마다 이렇게 우둑커니 자리를 지키는 음식점에 가면 중심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일이란 사실 미래를 바라보는 게 아닌 과거를 추억하는 날이다. 이미 지난 과거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우리를 단단하게 붙들어주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라칸티나는 기념일과 참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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